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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덜미를 꽉 쥐고 있는 사진처럼 보이는데 뒷통수를 쓰다듬고 있던거다



이번 설 연휴, 도로 한복판에서 이 녀석을 만났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줏었다라는 표현을 쓰려니 좀 그래서 만났다로 바꿨다.)


같이 점심 먹자며 집으로 지금 가고 있다는 매형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집을 나서던 길이었는데

길 건너편 주차된 차 밑바닥에서 갑자기 이 녀석이 튀어나오더니 계속 나를 쫒아오는 것이다.


근처 어느 집 대문이 열려서 뛰쳐나왔나 아니면 누가 버린건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그때 마침 매형 차가 도착해서 매형 차 뒤로 차들이 밀려있고 왜 앞에서 길을 가로 막고 있냐고

크락션을 울려대는 통에 경황도 없이 이 녀석을 매형 차에 태울 수 밖에 없었다.


뒷차들이 크락션을 울려대니 이 녀석이 그게 무서웠는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는데 그때 완전히 멘붕이었다.

차에 태우고 자세히 살펴보니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되어 보이고 치아도 아직 어린 새끼 발바리였다.


한동안 씻지 않았는지 고약한 냄새가 많이 났기에 주인이 있었더라도 집 밖에서 길러지지 않았겠나 생각도 들었는데, 문득 얼마 전 뉴스에서 명절이나 휴가철에 유기견이 늘어난다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나서 누나, 매형, 나 우리 셋은 이 녀석도 그렇지 않을까 그쪽으로 생각을 굳혔던 것 같다. (도로 위에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잠시 데리고 있다가 주인 나타나면 돌려줄 생각으로)



▲ 동물병원을 수년 만에 와봐서 허락 받고 찍은 사진



새끼 때 맞아야 할 주사도 아직 안 맞았겠지?

이빨도 아직 약하니 사료는 당분간 불려서 먹여야 될 것 같고...


개를 길러본 경험은 강아지부터 대형견까지 있어서 큰 걱정은 없었으나

막상 이 업둥이(?) 녀석를 기르려니 앞으로가 복잡해지는 심경은 사실이었다.


괜히 태웠나 그냥 모른체 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만났으니 인연이라 생각해야지 어떡하겠는가.


마침 축산업을 하시는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내려가던 길이어서

근처 가축병원에 들려서 욘석 먹을 사료와 종합 백신을 접종해줬다.


이름을 뭘로 지어줄까 고민해보다가 뜬금없이 예전 추억의 만화 '떠돌이까치'가 문득 생각이 났는데

그 만화처럼 욘석도 설날에 찾아왔고 털 색깔도 까매서 까치라는 이름으로 지어줬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다.



※ 3/1 내용 추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제법 통통해졌다.

같이 산책을 하면 나보다 먼저 가지도 않고 뒤를 졸졸졸 따라오는 것이 너무 이쁘다.

갑갑한 아파트보다는 마음껏 뛰어놀도록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 데려다 놓았는데 요즘 욘석 보러 가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이제 이 글에서 유기견이란 단어를 반려견이라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될 정도로 우리의 이쁨 받는 식구가 되었다.

부잣집이 아니라서 좋은 대우를 해주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밥은 안 굶길 테니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크자 까치야.